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4-11-25 22: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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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효율성을 위한 필요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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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이번 학기에 '인공지능 윤리'라는 제목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과학 철학을 전공하신 교수님께서 최근 봇물처럼 터지는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과 현황,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말씀을 해주고 계십니다. 평소 태블릿 pc는 커녕 일반 종이 노트를 선호하면서, 전자기기라곤 보급형 스마트폰과 자취방에 있는 데스크탑이 전부인 저에게 각종 생성형 AI들과 최신 기술에 대해서 알게 해준 상당히 가치 있는 교양 수업입니다.




 저는 평소 신경과학 공부를 하면서 뇌의 구조는 물론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을 해보았고, 그동안 깊이 고민하던 바들을 윤리 수업 시간 발표에 활용하였습니다. 개개인이 인공지능 관련 사업을 하나 구상하고, 사업 구상안보다는(우리는 창업 교과목이 아니니까) 그 사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윤리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나름 설명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전 마침 주제가 '로봇과 제조 산업'이었거든요. 지금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 중에서 저처럼 재료공학도, 그러니까 하드웨어에 대해서 많이 공부해본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특히 인공지능은 주로 컴퓨터라는 가상 세계에서 존재하기에,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만 강조되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강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향후 로봇이라는 육체를 인공지능이 얻게 된다면 인간과 한층 더 비슷해질 것이고, 이전과 다른 차원이 다른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사람을 치어버리면, 자율주행차를 만든 사람의 잘못인가? 아니면 운전자가 잘못인가? 보행자가 잘못인가? 혹은 인공지능의 잘못인가? 인공지능의 잘못이라면, 인공지능에게 처벌을 가할 수 있는가? 등등 굉장히 문제가 복잡하고 예민해집니다









 저는 의대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나노-바이오-제약-환경 트랙을 밟으면서 생물학과 생물 재료에 대한 지식을 좀 쌓았었고, 더불어 신경과학에서 생물학과, 하드웨어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전부터 학습과 전쟁사 칼럼에서, 운동선수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시냅스를 강화하고 현란한 기교를 부리는 것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서 전공까지 이 세계의 화학 구조와 엔트로피, 열역학 등 하드웨어에 대해 탐구하는 학과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전 주로 인공지능의 소프트웨어 측면에 쏠려있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하드웨어 측면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대략 발표 시간에 어떤 주제로 발표를 했으며, 제가 마침내 도달한 다소 무서운 생각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만약 시간이 나신다면 아래 2개의 링크를 참고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첫 번째 링크는 제가 이번 인공지능 윤리 시간에 발표한 원고 내용이고(ppt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제 블로그에 글을 쓰는게 좀 더 보람찬거 같아서 블로그에 박제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링크는 제가 뇌과학 동아리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한 내용인데 맨 마지막 3번 부분만 보시면 됩니다.








https://blog.naver.com/cognitasapiens/223653368062






https://blog.naver.com/cognitasapiens/223646739352









 간단히 위 링크 2개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교양 과목 발표 수업에 주제로 '소방관 휴머노이드 인공지능 로봇'을 가져와보았습니다. 현재 개발된 소방 로봇은 단지 인간의 원격 조종에 따른, 수동적인 존재이며 주체적인 지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공지능이 소방관과 결합하여, 특히 뛰어난 내열성과 내구도, 더 강한 힘, 산소가 필요 없다는 점(이게 정말 크죠 사람은 화재 현장에서 유독 가스 마시고 질식사하기 십상인데) 등등 다양한 강점을 들어 인간 소방관을 대체하면,




 화재 현장에서 사고로 순직하는 소방관의 희생을 줄이면서도, 좀 더 인명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더 많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소방관 군인 경찰 모두 극한의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항상 신변과 안전에 위협이 있고, 타인이나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널리 존경을 받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업무는 3D이고,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평소 안전함과 튼튼한 치안과 안보 속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인공지능이 소방관 로봇이 되고, 소위 영화에서나 본 슈퍼맨, 아이언맨이 소방관이 되어 많은 인명을 구하더라도 여전히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 딜레마가 남습니다.




 "누구를 우선시하여 구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는 결국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의 자원은 항상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경제학적 효율성을 고려하며 그 자원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오랫동안 논쟁해왔고 연구를 해왔습니다. 당연히 소방관에게 '목숨이 구해지는' 기회 또한 자원이며, 아무리 소방관이 슈퍼맨처럼 유능하다 하더라도 모든 현장에서 100% 인명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즉 우선순위가 생긴다는 것이죠.




 이는 결국 무슨 딜레마로 이어지냐면, 트롤리 딜레마로 이어지는데 이름을 잘 듣지 못했어도 내용은 바로 보면 이해를 하실 껍니다.





1명 vs 5명






 자율주행차 또한 트롤리 딜레마에 놓여있어서, 사람을 칠 것 같은데 핸들을 어느 쪽으로 꺽느냐를 가지고 엄청나게 민감한 이슈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뭐냐면, 공리주의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그걸 깊이 적용하는 순간 셈이 매우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프리츠 하버라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를 먹여 살린 화학자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공기에 있는 질소를 뽑아내서 인공 비료를 생산한 그의 업적으로, 현재 인류가 80억인데 최소 40억이 그 혜택을 받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굉장히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문제는 저기 기찻길에 놓인 사람이, 특히 소수가 뭔가 과학자이거나 유능한 공학자라서, 이번에 살게 된다면 이후 큰 기여를 해서 인류 전체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지구 온난화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천재가 저기 철로에 묶여 있다면, 1명 vs 5명이 아니라 80억 vs 5명의 논쟁으로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computer에서 compute는 우리 말로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고도로 발달된 계산기이고, 여기서 더 발달되어 인공지능이 나왔습니다. 때문에 인공지능에게는 모든 것을 계산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학이나 통계, 숫자로 뭔가를 정해주지 않는다면 우리 말을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죠.




 때문에 우리는 저런 딜레마에서 놓였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명시적으로 설명을 해야합니다. 사람은 머리 수로 세고, 무조건 머리 수가 더 많은 쪽이 우선이다!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제가 말한 것처럼, 소수인데 그 소수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람이라던가, 군대의 최고 지휘관이라던가, 유능한 공학자 과학자라서 이 사람이 없어지면 당장 인류에게 큰 손해가 닥친다던가, 얻을 수도 있는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던가 다양한 가짓수가 상상이 됩니다. 공리주의에 의거해서 다수를 선택하는 순간, 공리주의를 더욱 깊이 있게 적용해서, 소수라 할지라도 그 소수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다수에게 이익과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오히려 소수를 구하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에일리언 로물루스에서도, 인간을 보조하여 외행성 개척 등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합니다. 웃긴게 이 영화에서 대사가 "서너명을 희생해서 열댓명을 구햇다'라면서, 인공지능 로봇들이 공리주의를 따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세계관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주인공이 밑바닥 하층민 노동자 계급이라서 햇볕도 못받고 산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ㅋㅋㅋ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이런 식으로 수식을 집어넣어서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 젊은가 늙었는가? 늙은 사람은 앞으로 살 날이 적게 남았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아니까, 젊은 사람 특히 아기를 구하는 것이 노인을 구하는 것보다 더 선호되는가?


 어느 사람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여성이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는 약자인데, 약자로 배려를 해도 어느 정도 배려를 해야하는가? 예컨데 남성 5명은 여성 3명과 동등한가?


 어느 사람의 직업이나 기대 소득이 높은가? 이 사람은 일론 머스크라서 대단한 사업가이고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능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이라면 소득이 높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맞는가? 그 사람을 구해주고 나면, 추가로 소방관 로봇을 더 만들 수 있는 돈을 기부받거나 대가로 지급받을 테니까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아닌가?







한문철 tv는 이러한 과실 비율에 대해서 자주 의견을 내놓기로 유명하고, 사람들이 중재와 심판을 받기 위해서 자주 제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앞으로 한문철이 몇 명이나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 






 등등 우리가 여태 미루어왔던 다양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받으면서, 심지어 목숨 값을 계산을 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요새 철학자들이나 교육 정책자,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무작위'입니다. 그냥 모든 경우를 무작위로 해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새 들어 경제학과 교육학이 밝혀내길, 생각보다 한 사람의 성공이나 풍요가 그 사람의 노력보다는 주변 환경과 운에 의해서 너무나도 크게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거든요(나중에 시간나면 이것도 좀 깊이 다뤄보겠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이 어차피 3배수까지는 거의 성적도 비슷하고 능력도 비슷비슷하니까, 그냥 3배수에서는 제비뽑기를 해버리자! 제비뽑기를 통해 당락이 결정되면, 얼마나 사회적으로 운이 소중한지, 자신이 누리는 것이 사실 모두 자신의 노력이 아닌, 많은 것들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 덕분에 이루어졌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과거 썻던 칼럼에서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교육열 완화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지역별 쿼터를 서울 소재 주요 대학에 적용하자고 상당히 과감한 주장을 하기도 했었죠.











 하여튼 전 위의 발표를 하면서 굉장히 불쾌하고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에게 구해야 하는 대상의 우선순위가 생기는 순간, 결국 모든 것은 수치로 환원이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만약 인공지능이 "노인과 아기 사이에서 남은 수명을 고려해서 더 젊은 쪽을 구하겠다" 라고 판단하는 순간, 결국에는 나이 뿐만 아니라 성별 지능 직업 소득 사회적위치 명성 명예 과거업적 심지어 정치 성향까지 그 고려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간 문제일 뿐 하나를 계산하고 고려하기 시작하면, 결국 모든 것을 다 수치로 환산해서 수식을 만들어서 가중치를 조정할 것입니다.




 특히 제가 밀리터리 덕후잖아요? 원래 전쟁이나 아포칼립스 같은 극한 환경에서 이러한 윤리적 논쟁이 매우 격렬해집니다. 살기 위해서 먼저 굶어 죽은 동료의 시체를 구워서 먹은 조난당한 사람들은 무죄를 받기도 했고, 진통제가 모자른데 모두가 부상을 당해서 아프다고 약 좀 달라고 하면, 곧 죽을 사람에게 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살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놓아주어야 하는가? 등등. 전쟁은 항상 극한의 환경이고 모든 물자가 부족하기에, 우선순위에 대해서 생각을 자주 해야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인공지능 윤리를 발표하면서 느꼈던 부분인데, 얼마 전 뇌과학 동아리에서 발표를 하면서 좀 더 무시무시한 내용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마찬가지로 전 계층 구조라던지 항공망 복잡계 네트워크 등 뇌의 구조적 효율성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과거 카이스트 교수님들의 강연을 엮은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서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해서 강연을 하신 물리학자 정하웅 교수님의 논문들이 생각이 나서 읽어보았습니다.





좀 옛날 책이긴 한데 강력히 추천합니다 매우 재밌습니다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해서 설명하면 최소 2만 자는 적어야 하거든요. 매우 짧게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평소 '허브'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뭐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허브이다, 부산항이 아시아 물류의 허브이다, 쿠팡 물류 허브 등등. 무언가 많이 거쳐가는 중심지라는 소리입니다.




 특히 이 허브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에 쿠팡에서 전국으로 물건을 배송하기 전에 거쳐가는 굉장히 커다란 창고가 있는데, 거기에 불이 났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제때 배송되지 못하고 막혀버릴 것입니다. 




 사회적 허브인 공항에서는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집어넣고 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항상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요원들이 돌아다닙니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쏠리는, 사회적 허브인 곳에서 테러나 칼부림이 일어나면 많은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가 아는 '허브'에는 항상 물건이나 사람이 많이 쏠리고, 그만큼 안전과 효율을 위해서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과거 이태원 참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쏠리는 동안, 경찰 인력 부족으로 인해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압사를 당하는 비극일 벌어진 것처럼, 항상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안전이 큰 화두로 떠오릅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관계에도 허브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뭐 크게 이상한 소리는 아니죠. 누구는 조용히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관계가 적은 사람도 있고, 마당발인 사람도 있으니까요. 특히 마당발인 사람을 아는 것은 중요한게, 어느 다른 분야의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할때 이 마당발 친구가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쉽게 연결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위에서 설명한 물류 허브처럼, 인간관계에도 허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허브가 단순히 수평적 지위가 아니라 수직적 지위로도 존재합니다. 예컨데 대통령을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은 국가의 민감한 안보에 접근하면서, 어느 사회나 조직의 최고 엘리트나 책임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그려보면, 대통령 또한 핵심 허브라는 것이죠. 이 사람이 없어지면 당장 지휘를 받는 많은 부서들이 혼란이 생길 수도 있고, 이 사람이 뭔가 결정을 내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허브가 아닌 사람들은 뭐 놀러가건, 납치를 당하건 그다지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겠죠. 그러나 대통령이 납치되었다? 그건 계염령을 고려할 만큼 심각한 사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 짤은 좀 과거인데, 이때도 뭔가 대중 속에 수상한 사람이 이상한 거동을 하니까 허겁지겁 경호원들이 뛰쳐올라와서 트럼프 후보를 인간 방패를 이루며 둘러싸는 모습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이 테러리스트라고 가정을 해보죠. 딱 1발의 총알이 있습니다. 그걸 누구한테 발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그 사회를 무너뜨리고 혼란에 빠뜨릴까요? 좀 더 권력이 강한 사람, 높은 계층에 존재하는 사람,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사람, 많은 사람들과 아는 유명인(연예인이 될 수도 있겠네요) 등등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암살범이 코그니타 사피엔스를 쏴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테러리스트는 효율성에 입각하여, 사회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가장 중심 허브 인물, 그러니까 그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서 일하는 중요한 사람, 높은 책임과 권위를 가진 사람을 암살하려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저격을 시도한 사람들이 왜 트럼프를 저격하려고 시도했겠어요? 그냥 옆집 아무 사람을 살인하면 살인범으로 체포당하고 끝이지만, 대통령을 암살하면 사람 1명을 살해하는 것 이상의 강력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하웅 교수님의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허브가 인위적인 공격을 받을 때 전체 시스템이 위험이 빠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사회는 그러한 중심 허브에게 좀 더 많은 안전에 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근데 제가 이 말을 듣고, 대통령이나 평소 관심이 있던 밀리터리를 연결시켜 보니까, 이 말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아까 위에서, 인공지능 소방관이 사람의 목숨에 값을 메기고 계산하는 것을 상상해봤죠? 그러니까 인공지능 로봇은, 위와 같은 물리학적 통찰과 지식을 통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 다수의 행복. 그러니까 전체 시스템의 유지와 안정, 사회의 평화를 위해 무조건 핵심 허브 역할을 하는 사람부터 구한다" 라고요.




 


이 책이 좀 오래되서,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후보이던 시절 정치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 박근혜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보았더니 마찬가지로 중심 허브가 뚜렷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신영수 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도 이 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뿐더러 위 네트워크에서도 말단 끝에 존재합니다. 이 분이 사라지는 것은 네트워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저기 중심 허브를 이루는 박근혜씨를 없에버리면 전체 네트워크가 붕괴된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헌법에 기본권과 인권에 대해 명시하고 있으며, 특히 특수 계급이나 계층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무슨 귀족이나 왕족이 따로 있어서, 이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더 존귀하고 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더 얻어야 하고 그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안전과 목숨, 생명과 인권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트워크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관계마저도 이렇게 허브라는 것이 존재하고, 랜덤한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과, 아니면 중심 허브에 위치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비교할 때 전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법에 명시한 것과 달리, 실제로 인간은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정하웅 교수님이 저처럼 뭔가 사회에 대해서,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교수님의 이론을 확장시켜보니 이미 사회 관계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조금만 생각해보면 '목숨의 중요성'이 충분히 계산이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정하웅 교수님은 복잡계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허브에 대해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설명하셨거든요. 당연한게 허브가 파괴되면 전체 네트워크가 마비되어 버리기 때문에, 전체 네트워크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허브에게 한정된 자원을 더욱 배분해야지 다수가 행복하고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대통령 경호처가 1년에 쓰는 예산이 1천억이라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그런 수준의 경호 서비스를 누릴 수도 없고, 누릴 필요도 없고 누려봤자 효율적이지 않겠죠. 저에게 1천억이 생기면 당장 테슬라를 비롯한 주식을 하러 가지, 경호에 딱히 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경호에 매년 1천억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액수만큼이나 대통령의 신변이 중요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이 아닌 미국 대통령은 당연히 이 액수를 초월하는 비용을 지불하겠죠 사실상 전 지구의 대통령인데.




 결국 이런 한정된 경호 인력과 자원, 비용을 대통령이라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허브에게 집중 투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효율적으로 쓰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대통령에게 소요되는 비용을 1천명에게 나눠서 쓰는 것보다, 그 비용을 중요한 사람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공리주의적으로도 납득이 된다는 계산을 의미합니다.








 제가 섣부른 판단과 편협한 사고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전 어쩌면 사람들이 알기 싫어하는 무섭고 불편한 사실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전체 네트워크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허브에게 집중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에게 이익이라는 것은, 결국 자원의 투자에 있어서 불평등이 곧 전체의 안전으로 이어진다는 합리적인 판단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워낙 책이나 논문 내용을 요약해서 이 글만 보고 제 결론이 너무 허황되고 부실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데, 실제 제가 찾아본 사례나 내용은 훨씬 더 많고 그것을 좀 이해하기 쉽게 몇 개의 예시만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전 이번에 굉장히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평등할 것이라고 믿었던 기회들은 사실 평등하지 못하고, 평등한 것이 비효율적이기에, 결국 효율성을 위해서 불평등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소수에게 재산이 쏠리고, 부익부 빈익빈이 생기며, 사회적으로 핵심 허브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자원과 경호가 투자되는 것은 그 사람이 예뻐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함일 것인데, 그럼 사회 전체를 위해서 불평등은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평등을 추구하여, 대통령에게 집중적으로 매년 소비되는 1천억의 비용을 용납하지 못하여 전 국민 5천만명이 골고루 나눠 가진다면 평등하긴 하겠지만, 대통령은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일 것이고 적대 세력이나 테러리스트의 손쉬운 표적이 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암살당하거나 납치를 당하는 등의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사회 전체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높아지겠죠.




 그렇다면 효율성과 평등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인가.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 보장을 위해, 효율성을 위해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가로 굉장히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혹시 이 글을 끝까지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우선 제가 먼저 위에서 언급한 링크의 글들도 마저 다 읽어보시길 추천들비니다. 제가 왜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껍니다.


 



rare-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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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드ㅇ3ㅇ · 1267153 · 11/26 11:44 · MS 2023

    대부분의 경우 성장중인 경제의 시민들은
    불평등을 용인하는것 같습니다
    중국의 사례를보면 고도성장기에 불평등문제를 꾸준히 지적받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공요인과 실패요인이 모두 개인의 능력이라 응답했습니다
    근데 최근 성장이 둔화되자
    그 요인이 불평등한 기회라고 응답했지요.

  • Cognita Sapiens · 847641 · 11/26 12:29 · MS 2018

    저도 그 설문 보았습니다 정확하십니다

  • 테드ㅇ3ㅇ · 1267153 · 11/26 12:31 · MS 2023

    제생각엔
    성장기에는 기회를 얻을수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람들이 순응하는거같은데
    이제 정체기가시작되면 자기의 기회가 없음을 깨닫고 분노하는것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등한분배보다도 기회의사다리를 보는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