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PineTree) [50039] · MS 2018 · 쪽지

2007-06-15 19:54:45
조회수 72,548

5년 동안의 저녁 밤하늘. (5수) -운명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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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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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06. 3. 17. 새벽.

잠이 오지 않는다. 왜일까? 갈증이 난다. 어지러운 방은 나를 더욱 짜증나게 한다.

여기서 멈추고 싶진 않다. 내가 바란 삶은 이런 게 아니다.

자신과 싸운 대가는 이런 것인가. 만족할 수 없다.

○○녀석의 합격이 때때로 내 머리를 스쳐간다. 그리고 나의 옹졸함을 느낀다.

○○를 보며 과거 잘난 척하던, 남의 심정을 배려하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행동이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던,

‘나’를 되새겼었는데.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 ‘과거의 나’는 합격?

아아. 물론 나의 착각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실력이 부족했기에. 그렇기에 여기서 울고 있는 거다.

○○대라. 모 아니면 도라지만 뭔가 나에게 열정이 솟지 않는다.

나는 안다. 하지만 열정을 바쳤던 나이기에...

그래. 다시 승부를 걸어야겠다. 나는 승부사 기질이 강한 가보다.

지고 싶지 않다. 이번에는 바람직하게 진 걸까?

지금도 아른거리는 그 여자아이. 운명인가. 웃기지도 않는다.

지난 1년. 열심히 공부했고 후회는 없었는데... 모든 것을 날린 느낌이다.

그래도 살아 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와 어머니를 위해.

이기지 못해도 좋다. 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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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수를 실패한 이후... 나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수학. 수학의 실패만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답답했다. 원서 철이 되었고... 원서를 적어야 했지만...

수학 4등급으로는 넣어볼 내가 바라는 이과계열의 대학은 없었다.

당연히 거의 자포자기였다.

어머니는 정말로 슬퍼 하셨고 괴로워 하셨다.

아들이 마음 고생한다고.

어머니에게 너무나 죄송했고, 자신이 싫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원서는 넣어야 되지 않겠냐면서... 원서를 넣자고 하셨다.

어머니의 바램대로 원서를 넣은 후... 나는 방황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게임을 하다가...

정말 게임이 싫어서 그만두면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루에 나와서 아픈 가슴을 쥐고 괴로워 하다가

체력이 다 빠져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리곤 했다.

항상 ‘아침’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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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잠이 오지 않는다. 심장 부근이 아파온다. 왜. 왜. 무엇 때문이지. 왜 젊은데.

나는 정말 힘든 사람에 비하면 불행하지도 않은데.

나쁜 곳도 없는데 왜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거지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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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일 밤 . 가슴중앙이 쓰리게 아팠다.

마음의 병이 무섭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






아버지는 나를 신경 쓰시지도 않았다. 정말 슬펐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그렇게...나의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힘든게 참 슬펐나 보다.

나도 어머니가 내가 시험을 칠 때마다 절에 가셔서

아들을 위해서 허리가 아프실 텐데도 절을 하시는 걸 알아서 더욱 슬펐다.

왜 이렇게 계속 낙방만 하는 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아시는 점술사에게 나를 데려가 주셨다.

한 아주머니가 점술사셨다. 그 분께서 말씀하셨다.

“한 번 더 해볼 생각이 있다고?”

“네.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안돼. 안돼. 올해는 해봐야 또 떨어져. 지금 붙어 놓은 대학 있지? 거기로 가려무나.

어차피 해봐야 안 된단다. “

점술사 분께서는 내가 공부를 다시 해도 안 될꺼라고 하셨다.

정말로... 괴로워졌다.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셔서 이야기 하셨다.

이제 그만 수능은 잊어버리고 대학에 가라고 하셨다.

일단 대학생활을 하면서 생각을 추스르라고 하시는 말씀이셨다.

2월. 원서를 넣고 어머니께서는 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일본으로 가족끼리 여행을 갔다.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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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9. 일본. 동경.

어느새 세월은 흘러서 2월 9일. 마음은 어지럽고 몸은 과식으로 엉망진창인 듯.

조금 괜찮아 졌지만 어제 걸려온 강 선생님의 전화는 가슴 아프다.

아침 7:40분에 나와 공항으로.

10:40에 김해로 출발. 도쿄에 도착해서 아사쿠사를 보았다.

절이라는데 엄청 거대한 등롱이 특색이었다. - 중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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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내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본 여행 중.... 그 때가 마침 설날과 겹쳤던가? 해서 일 년의 운세를 보는 곳이 있었다.

매년. 일본에서는 설에 그해의 운세를 보는 종이를 뽑는 행사를 하는데

마침 할 수 있어서 나도 했다.

결과는 5개인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100엔인가를 주고 종이를 1장 뽑았다.

결과는 “凶” (흉)

흉도 흉에 따라 그해의 상황이 일본어와 영어로 적혀있었다. 영어로 읽어 보니 험난했다.

아. 한 숨이 나왔다.

정말. 일 년의 운세가 이렇단 말인가.

이제 포기 하란 말인가.

그렇게 누군가 외치는 것 같았다.

“이런 점 따위. 기분인걸 뭐.”

그냥 잊고 다시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아.......”










다시 한 번 보이는 “凶” (흉) 자.









하하하. 어머니와 동생이 나를 생각하는 말을 해주었다.

올해의 운은 기대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생각 하며 너무나도 슬펐다.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에 입학 뒤, 수업을 듣고, 리포트를 쓰면서, 1달을 보냈다.

모든 것이 재미없었고 허망 했다.

그래도 대학수학과 컴퓨터 수업 등 모든 수업을 열심히는 공부했지만...

항상 가슴 속이 아려 왔다.

술을 마시고, 생애 첫 MT를 갔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 과 아이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듣다가... 슬퍼졌다.

우리 과는 정말 아쉬운 점수들의 집합이었는데...

누군가 술을 마시고는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도...”

하는 말을 했다. 몇몇 학생들도 공감 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에 대해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슬퍼졌다.

그 날 이후... 갈수록 신경은 예민해져만 갔다.






그러던 중 아는 형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 형이 한마디 했다.

“재수는 왜 했노? 그냥 재수 안하고 갔으면 지금 보다는 좋은 곳 다녔을 껀데. ”

순간 자신에 대한 분노와 함께 큰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하하하. 형 무슨 말씀을...”

하면서 웃고 넘어갔다. 그러나 크게 외치고 싶었다.

“비록 제가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수험생활 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점 모두 제 안에 남아 살아 있습니다.

보람찬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마구 제 삶을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

정말로... 슬펐다.

나는 축구를 볼 때 열심히 뛰는 국가대표가 실수를 했을 때 마구 욕을 해대는 사람이 싫었다.

최선을 다해서 시합을 하는 선수를 가볍게 욕을 해대는 당신은

무엇인가에 정열을 쏟아 봤는가 물어 보고 싶었다...







(수험생활 1 년 치 모의고사를 펼쳐서 늘어놓아 보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과연 뭘 가장 하고 싶은 걸까?

현재의 대학도, 합격 하고 싶었던 대학도 그렇게 원하지 않았다.

게임도 더 이상 재미없었다.

생각 하고 생각 할수록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대학도, 점수도, 합격도 아닌

‘수능과의 승부’ ‘수험공부’였다. 그 뒤가 합격이겠지만 말이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이제는 우스운 상황이었다.

가장 하고 싶은 게 이제는 수험공부가 되어버리다니.

나도 생각하는 게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그랬다. 정말. 참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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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4수 끝난 때.

- 아버지의 말에 가슴을 움켜쥐고-

수능이 끝나고 많은 양의 수학문제를 푼 건 아니라 생각되지만 (상위권 층에서)

1년 정도되돌이 켜 보아도 대충 15권 이상은 수학문제집을 풀었다.

그 푼 문제들을 수능을 못치고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그딴 식으로 게임이나 하고 열심히 공부 안했으니까 그렇지 라고 말하셨다.

그 말이 아들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할지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아버지의 가벼움과 실망이 다시 한 번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렇다. 과정은 본인만 정확하게 아는 거다.

결국 타인의 평가는 결과로만되는 거다.

사실 올해 합격 했더라도 공부 량은 그렇게 차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방법적 측면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씁쓸했다.

사실 아버지는 집에서 게임을 하며 쉬는 내 모습만 보고 그러신다고 위안을 삼으며

쓰린 가슴을 공부로 씻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전적 실력이 없어 결국 수능을 못 쳤다.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한 나날들은 후회는 없지만

아무런 결과도 성취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수능을 잠수부가 긴 심해를 들어가 진주를 캐오는 것이라고 할 때

매번 치는 모의고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서 바다 속 깊숙이 들어갔고

나의 동료들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했다.

진짜 수능을 마치고 난 뒤 해안가에서 내 손에는 찰랑거리는 바닷물만 있는데

동료들이 진주를 건지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지만 아들로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는 게

어쩔 수 없나 보다.

손에는 바닷물만 찰랑거린다.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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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에 대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다가 분노에 휩싸여서 학교를 나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였다.

정말. 폭발 할 것 같았다.

“툭”

누군가와 어깨가 닿았다. 나는 분노로 찬 눈빛으로 그 사람을 순간 바라보았다가,

내가 무슨 짓인가 생각했다.

바로 사과 했다.

“죄송합니다.”

그 사람은 순간 당황한 듯 했다가 지나쳤다. 나의 화를 풀 곳이 없었다.

“툭”

또 뭔가 부딪쳤다.

정말 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건 사람이 아니라 버려진 나무박스였다.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대로 나무 박스를 발로 후려 차서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부서진 나무 박스를 보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멍청이. 멍청이.

사람들이 혹시나 볼까봐 달려갔다. 눈물이 흘렀다.  

















괴로워 하다...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다.

살기 싫을 때는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었다.

함께 학원 생활을 했던 동생 중에 다시 수험생활을 하는 아는 동생이 있었다.

학원에서 같이 장난도 치고 함께 공부도 열심히 했었다.

수험생활을 한다고 하니...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

마침 그 동생이 언어가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래서 나는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괴로운 나지만, 언어영역이라면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 5월 정도까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때까지...)

주말마다 그 동생에게 언어영역 과외를 해주었다.

물론. 보수는 바라지도 않았다.

이건, 내가 살기 위함 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자신이 힘들 때

정말 자기를 다시 사랑 할 수 있는 방법임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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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 2006. 4. 24. 새벽4시.

웃음이 나온다. 뭘 해도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고 초조한데.

잠조차 잘 수 없는데. 불현듯 수학문제가 풀고 싶어 정석 미적을 붙잡고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풀었다. 하. 그냥 풀려 버리네.

살아있는 것 같다. 나는 역시 미련 곰탱이. 바보다. 승부를 역시. 하하. 하지 않으면

잘 수조차 없는.. 하하.. 수학 잘 하는 거 아니었나...

나는 분명 이제는 못하는 학생은 아닌데 수능에서는 개차반이구나.

문제 푸는 기계의 실력을 가진 수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공부할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만 이 악몽 아닌 악몽을

내손으로 그만 둘 수 있을 꺼다.

하하.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보람이 될 줄이야.

나는 이제 정말 공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걸까.

어두움을 이제 생각말자.

이렇게 공부가 재밌는데. 외로울수록 강해진다...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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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재수를 시작 하려 했다. 하지만... 가장 큰 공포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였다.

점술사의 말과, 일본에서의 새해 점은 더욱 기분을 좋지 않게 했다.

하지만, 보람찼던 그 수험생활과 공부는 정말 다시 하고 싶었고,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실패해도 좋았다.

합격을 하지 못해도 좋았다.

‘다시 한 번.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이게 나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모든 힘을 모아서 4년 동안이나 공부했는데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수능에 대해서 다시 도전한다는 건 너무나 두려웠다.

정말. 두려웠다. 내 심정은 공부를 하고 싶은 심정, 공부를 하기 싫은 심정,

모든 힘을 다시 한 번 노력해서 도전 해 보고 싶은 심정,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여기저기 섞여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생각은 이것이었다.

‘꼭 공부를 하지 않아도, 수능을 치지 않아도

나는 가족들과 건강하게 살고 있고, 힘드신 분보다는 행복하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고 나서,

‘그때 한 번 더 도전해볼 껄...하는 후회‘를 할 것 같았다.

합격 가능 권에 못 들어갔다면, 그래 내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받아 들였을까...

그리고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공부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다.

그리고... 보람차게 살았던 삶의 매력이 계속 나를 불렀다.

노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뭔가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채로

괴로워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먹었다.


그럼에도 나의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커서

뭔가 용기를 얻고 싶은 데 용기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머릿속이 꼬이고 힘들어진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의 과거에 살아 온 삶을 돌이켜 보기 위해서

어릴 때 살던 동네로 지하철을 타고

회상에 잠긴 채로 떠났다.



(그 날... 지하철을 탔는데. 방송 나오는 화면이 고장나있었다...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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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거닐었다.

코흘리개 시절에 따조로 딱지치기 하던 곳, 술래잡기 하던 곳, 달리기 하던 곳,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골목... )

학원 가다 어머니 몰래 다니던 오락실, 처음으로 친구와 싸웠던 곳, 친구를 잃었던 곳...






(내 초등학교..)



(나에게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준 학원...)



여러 기억이 남아있는 과거의 공간에서 나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았다.




(내 집 가까이 학교의 농구 골대...)









(걷고... 걸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먼 가 애틋함을 느끼면서도 조금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예전 다니던 중학교로 가던 도중에, ‘●●철학관’ 이라는 역술집이 있었다.

순간... 너무나도 궁금했다.

왜 내 운명은 이럴까...?

지금 생각 해보면 젊은 사람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철학관에 가고 싶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철학관으로 발을 향했다.

들어가려 하자, 문이 잠겨 있었다.

“저기...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시나요?”

순간 자신에게 웃으면서 그래, 만날 운이 아닌 가 보다. 생각했다.

점을 본다고 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내 마음 따르는 데로, 가는 거지.

생각 하고 중학교로 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오래간만에 가본 중학교는 어릴 때 보다 작게 느껴졌다.

벤치에 앉아서 후배들이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걸 보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다...

그리고 예전 살던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과거를 회상 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마음 정리였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집으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중,

아까 지나쳤던 철학관을 다시 보게 되었다.

1년 전만 해도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내가 정말 답답했긴 답답했었나 보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철학관이 눈에 보이다니 말이다.






문 옆을 지나가는데...

안에 사람이 계신 듯했다.

뭔가. 인연이 있는 것일까.

인연이 있는 걸까.

나는 철학관 안으로 발을 옮겼다.



철학관에는 보통 아저씨 같은 역술가 한 분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 분으로 생각되었다.






역술가 분께 사주를 봐 달라고 했다.

현재까지의 사정과 올해 시험에 대해서 결심 한 점에 대해서 말했다.

이 역술가 분은 보통 점술가들처럼 이러이러할 테니 이러저러 하라.

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사람은 큰 전체 운은 타고나지만,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항상 역술가 분께서는 그 사람의 좋은 길로 조언을 해주신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 분이 공부를 많이 하신 역술가라는 게 느껴졌다.

젊은이를 배려도 해주셨다.






“19○○ 년  음력○월 ○일 생, ○시라..”

역술가 분께서 자료를 보시면서 한자를 적으시며 계산을 하시더니

“다 됐습니다. 어디 봅시다...”

전체적인 사주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물론, 이건 보통 이런 사주를 지닌 사람의 전체운이라고 하시면서

통계에 가깝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다시 시험을 보시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음... 학생 운이 올해까지는 없네요. 학생 운이 19살부터 5년 정도 고생할 운이에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운이 바뀌겠네요.

올해 시험을 치지 마시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준비하세요. 그 때 운이 있습니다. “










“그렇습니까... 사실 저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 하지 않습니다.

어떤 점술가 분이 포기 하라고 하시기에 용기를 잃었었지요.

그냥 용기가 필요해서 여기와 봤습니다.

운명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제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말씀 감사했습니다.“



역시나... 올해 운은 없다고 하는구나.

도리어 웃음과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하하. 괜찮아.

운명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때, 역술가 분이 말하셨다.

“저기, 학생. ”

“네? ”

“혹시, 시험 치고 발표가 언제 나는지 알 수 있습니까? ”

“아... 보통 12월쯤 성적표가 배부되고, 1월~2월 쯤인가? 합격자 발표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해볼만 합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

“예? ”

“학생 올해 운은 좋지 않습니다.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있고, 정신적으로도 힘듭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운이 바뀔껍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 하신다면, 시험을 조금 못 볼 지라도 내년에 합격자 발표 때 학생 운이 바뀌는 시점이기 때문에 아마 합격이 가능 할 수도 있을껍니다. “





빈말이라도,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는 말을 들으니 감사했다.

“학생이니 복채는 작게 받겠습니다. 합격을 기원해 드리겠습니다.

기억날 때 연락해주세요.

학생, 한 번 열심히 해보십시오. 제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하니 이런 말씀 드리는 겁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시험에는 당연히 합격 할 수 없지요.

남은 건 학생에게 달렸습니다. “

말씀이 정확하게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용기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복채도 내 생각보다 작게 받으셨다.

그리고, 다시 그 분을 만난 건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얻은 건 용기 였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뭉그러지는 것 보다는,

부딪쳐서 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싶었다.





더 이상 학원이나 다른 곳에 가는 것은 첫 번째로 부모님께 너무나도 죄송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무너진, ‘수리영역’ 과 승부를 보기위해서

한 번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과목은 일단 머리에서 떠나 있었다.

자금이 필요했다. 친척께서 대학 입학 축하금으로 준 돈과, 세뱃돈,

그리고 내 통장에 저금 되어있는 돈 약간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약 100만원 가량 정도 가 되었다. 이것으로,

문제집과 독서실비용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에게도 침묵을 지키면서 정말 오랜만에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침 9시.

대학교를 가는 것처럼 하면서 집 가까이 독서실로 향했다.

이제 대학교 수업은 모두 포기하기로 했다.

내 마음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다. 독서실에서 하루 공부를 해보고,

집 주변의 독서실과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본 뒤,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독서실에

내 거처를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초기의... 내 책상 앞.)

오래간만에 하는 공부는 정말로 힘들었다.

물론 공부를 오랜만에 하니 재미도 있긴 했지만..

3시간이 넘자 지치기 시작했다.

특히 수학위주로 했는데, 잘 해 보겠다고 수리 10-가, 10-나를 완전히 파헤치겠다고 정석에다가 숨마쿰라우데 까지 풀기 시작했다.

보람차게 공부했던 과거의 공간들이 그리웠지만,

이 혼자와의 싸움에서 나는 이기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목표는 다시 ‘공부의 익숙함과 생활화’였다.

과거, 재수 학원에 있을 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면서 공부했다.

처음은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바심도, 욕심도 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익숙해지기 위해서 계속 노력했다.

공부가 지겨워지면 그냥 독서실에 앉아서 ‘삼국지’를 읽었다.

그리고 과거부터 읽어왔던 수기들을 계속 읽으면서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성공하신 분들의 장점을 계속 생각했다.

(수기... 생각해보면 정말 많이 읽었네요.)

공부를 하다가 밥을 먹을 시간이 되면 나가서 김밥 1줄을 먹었다.

용돈도 아껴서 문제집과 참고서를 사기로 했다.

때때로 좋은 음식도 당연히 사먹었다.

3수 때 처럼 잘 안 먹어서 몸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였다.

나중에는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가는 방향으로 했다.

밥을 차려주시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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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수험 생활은 사실 정말 고통과 고생을 겪으시는 분들과 비교하면 힘든 것이 아니다.

재수 생활 그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생활이야 대충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성공적인’ 재수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과의 승부를 거쳐야 하는데,

나태한 자신은 정말 강적이다.

이 승부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무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이 ‘승부’가 수험생활을 어렵게도, 해볼만 하게도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처럼 누가 억지로 학교에 가라고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자기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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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서 이번에는 4수 때 수학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데로 틀린 문제를 오려서 그냥 보관하기로 했다.

한 공부 관련 책에서 박스를 이용해서 공부를 하는 것을 읽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는데 학습이 보람찼다.




틀린 문제를 하나하나 계속 모아서 틈틈이 하나하나 보아 나갔다.


영어 단어와 문장도 메모에 적어서 박스에 담아서 틈틈이 보았다.






모의고사는 사설 학원에서 치기로 했다.

재수학원생과 비교해도 공부시간이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독서실이 여는 아침 9시에 가서 되도록 저녁 11시 정도까지 있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설모의고사를 신청해서 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능한 한 모든 모의고사를 (실전 감각을 유지 하려고 ) 다 치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그렇게 만족할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점수는 더 이상 보지도 않았다.

나의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나는 시험을 치고 나서,

문제를 풀고 나서 채점을 할 때,

맞은 문제는 동그라미 같은 맞았다는 표시를 하지 않고,

틀린 문제만 ‘크게’ 표시 했다.



(언제나 틀린 문제들만 형광펜으로 크게 표시 되었다...)


틀린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수험생이, 결국 자신의 실력발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의고사 시험지는 채점 뒤에도 매긴 흔적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4수 때부터, 항상 모의고사를 치고 나면, 모든 틀린 문제,

맞았어도 모르는 부분은 모조리 시험을 치면서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친 그 주일에 모두 기본서를 뒤지면서 틀린 문제를 공부하고 검토했다.

맞았어도 모른다고 생각되면 틀린 표시를 했다.




(모의고사 1년 분량을 쌓으면 이 정도다. X 5묶음...)


5수 때도 마찬가지 였다.

모의고사를 치고 나면, 항상 용어 하나라도 모르면 사전을 뒤져가면서 풀었고,

가장 내가 무식하게 공부했던 방법 하나는 ( 정확하게 알겠다는 의지였다.)

모의고사를 치고 나서,

외국어 영역 모의고사에 나온 모든 지문을 하나하나 다 분석 했다.

이렇게 하면 듣기를 제외한 33문제에 포함 된 지문 20여개가 있는데,

하루에 3~5지문 정도씩 의심 가는 점이 없을 때 까지 분석하고 분석했다.

인터넷 강의 영어 스승께서 가르쳐 준 방법을 나름 모의고사에 응용 했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하게 공부는 되었다.

(모의고사에 모르는 단어 모조리 찾으면서 사전도 계속 해서 표시가 추가 되었다...)

또한 mp3를 가지고 가서 외국어 모의고사 듣기 평가할 때 녹음을 해서

스크립트를 보면서 계속 듣고 듣고 들었다.

이건 나름 모의고사를 완벽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였다.





항상 “점수를 보지 말고 정확하게 알자” 를 외치면서 공부했다.





(내가 수험생들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 중 하나는...

죽어라고 무식하게 공부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합격 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항상 깨어 있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

그냥 무식하게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다만 항상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것이 자기에게 맞고,

보람 찬가를 공부하면서 찾고 찾고 또 찾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내는 것을 가장 부탁 하고 싶다.

다른 잡 생각 다 버리고,

공부 자체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수험생활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 수험생활이 아닐까.

매년 공부 방법을 잘 모르는 과목을 무식하게 공부 하다가

낙방의 쓴잔을 많이 마셨다.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자...

정말 공부를 하다보면, 죽어라고 열심히 한 당신 보다

정말 대충대충 공부한 듯한 학생이 더욱 성적이 잘나오는 경우를 접하는 경우를 느낀다.

아마 그건 그 학생이 그 과목에 대해서 좋은 스승을 만났거나

공부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있거나,

이미 공부가 많이 되어 있어서 이다.

그럼 뒤에서 쫒아가는 우리의 수험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에 이 위치에서 항상 나는 느꼈다.

‘깨어있어야 한다.’ 계속 그들을 벤치 마킹(참고) 하고,

가장 중요한 점이 훌륭한 스승을 찾고 찾고 찾고 찾아야 한다.

(깨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식하게 공부를 하면, 잘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좋은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도 있으니...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5월인가 6월인가. 그해 처음으로 첫 모의고사를 쳤다.

점수가 당연히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5수 때 첫 종로 모의...)

6월 KICE 모의고사를 풀어 보았는데 제대로 푼 과목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당연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차근차근 보람을 느끼기로 했다.






점수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가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는 것 이었다.









(당시 공부 할 때 내 자리...)


그렇지만... 여전히 수리영역에 대한 나의 상처는 컸다.

특히 두려움이 컸다. 나의 지난 4년간의 수리영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 푸는 속도’와 ‘계산 실수’였다. 특히 ‘계산 실수’.가 컸다.

항상 풀어내면 거의 맞추는데, 시간 부족으로 못 풀거나, 계산 실수의 연발이었다.

예를 들면 1+2+3+4=15라 써서 틀리거나  2+3=6, 루트2의 제곱은 4...

이런 기초계산이 실전 상황에서 빈번하게 틀리는 것이었다.

수학을 풀 때 원리와 이론을 너무 생각하면서 풀어서 늦게 푸는 것도 많았다.

(정확히는 역시나 난이도가 올라간 수리영역에 비해서 속도감 있는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건... ‘초등학생용 계산 문제집’을 푸는 것이었다.



풀면서 조금 계산이 빨라졌고 정확해 짐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시도 까지 했을까..)






혼자서 공부한 지 2달이 넘어가자... 역시나 정말로 힘들었다.

독학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고,

정말 가슴속에서 슬픔이 배여 나오게 했다.

하지만 고요함속에서 배움의 이치를 생각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할 때 마다 힘이 생겼다.




그래도... 갈수록 학습 효율이 떨어졌다.

생각을 해보니, 재수 학원이나 학교의 자습시간은 하루에 많아야 4시간 정도인데,

나는 거의 하루 종일 자습에 가까웠다.

뭔가 ‘수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수업을 들을 방법은...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EBS와 티치미등의 무료강의를 집에서 들었다.

며칠 듣다 보니... 역시나 스승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역시 컴퓨터란 존재는 딴 짓을 하게 만들기가 너무나 쉬웠다.

물론, 과거처럼 통제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네이버, 다음 등에서 뉴스만 간간히 보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각 과목별로 다 수업을 듣는 것이 효율을 높인다고 생각 되었다.

컴퓨터로 시간 뺏기는 게 두려웠던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PMP를 구매하기로 결정 했다.

PMP를 구매하는 걸 부모님께 알리고 싶지 않아서 몇 년간 모아온 저금통을 깼다.




(깨진 저금통.)

이게 십 몇 만원인가의 돈을 얻게 해줬다.

여기저기 알아봐서 30만원 정도로 만족 스러운 PMP를 구매 할 수 있었다.

그 뒤, 나의 독서실에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동전 들...)

매일매일 보람차게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공부한지 좀 지나서 어머니는 아마 내가 수험 공부를 하고 있는 걸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는 관심 따위 없었고... 슬펐지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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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아버지가 잔소리를 나에게 해댔다. 짜증나는 마음과 함께 독서실로 향했다.

패닉의 \'균열\'을 듣고 있으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괜찮아. 아버지는 항상 그랬잖아. 그랬잖아. 눈물이 흐른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어진다. 옷장이 화풀이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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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공부를 하다 지친 마음으로 컴퓨터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아버지가

“저렇게 젊은 놈이 세월이나 낭비하고 있고... 쯧쯧...”

순간 정말로 극도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독서실이나 가자. 쉬어 봐야 뭐해...’

난... 그 날 정말 슬픈 마음으로 독서실에서 하루를 보낸 걸 기억한다...




( 수험생활의 내 자리...)



인터넷 강의 중, 유료강의가 듣고 싶은 게 몇 개 있었다.

하지만 내 자금은 이제 남은 기간의 독서실비와 모의고사 비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부탁했다. 어머니는 그런 걱정은 말고 필요하면 다 신청해서 들어라고 하셨다. 공부하는데 아끼는 거 아니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졌다.

인터넷강의는 너무 많이 들으면 독임을 알기에, 꼭 필요한 최선의 강의만

신청했다.

확실히 강의를 들으니 학습효율이 올라갔고, 고독감과 적막감이 크게 줄어들었다.

수리 EBS프린터, 티치미 교재, EBS문제집을 위주로 수학을 계속 공부했다.

정석, 교과서, 교과서 자습서,  숨마쿰라우데, 설명이 유난히 잘 되어있는 수학...

기타 수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을 계속 보면서 수학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7월쯤인가? 대학교에서 성적표가 나왔다.

올F. 한 과목은 D+.

배수진이었다.

군대와 대학이 압박해 들어왔다.

그때마다, 공부에 빠지는 즐거움과 보람됨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시간을 보내기위해서 힘썼다.


공부를 하면서 여러 수기와 여러 고마운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의 오답 박스는 갈수록 내용이 많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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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의 하루...

7:00 기상

7:10~9:00 - EBS, 수학 강의 시청 및 수학 문제 공부

9:00- 독서실로.

9:00~12:30 -독서실에서 공부 (기본서+문제집 공부)

12:30~1:00- 점심식사

1:00~6:30- 독서실에서 공부 (강의 위주)

6:30~7:00 -저녁식사

7:00~11:00 -독서실에서 공부 (문제집+간간히 강의)

11:00 귀가

11:00~잘 때 까지 동생과 공부, 이야기. 휴식.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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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공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모의고사 치는 시간도 활용 하고 싶었다. 사설 언어영역은 나에게 칠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

다. 그래서 모의고사 신청을 해놓고, 언어영역 시험시간에는 다른 공부를 했다.



(과탐 필기 한 것에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정리 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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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공부가 잘되고 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

시간이 가는 걸 알고는 있지만 평온하고 침착한 가운데 묵묵히 문제를 풀고

새로운 지식을앎을 즐긴다.

문득 공부가 잘 되서 기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주변을 보면

외롭게 책을 보고 있는 자신이 뿌듯하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부모님, 친구들, 어여쁜 여학생들. 고마운 선생님들, 그 외 감사드리고 싶은 사람들. 정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고는 다시 책으로 빠져든다.

스쳐가는 잠깐의 쓸쓸함과 행복감이 스쳐지나가고

다시 지식의 바다 속으로 나아간다.

(이런 기분이 들 때... 답답한 일상의 수험생활에서 낭만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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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안... )




수능이 1달 정도 남았을 때, 어려운 실전 연습을 하고 싶어서 오르비에서 악평이 자자했던

‘특작’모의고사를 사서 풀었다.

와... 정말 무시무시하게 어려웠다. 예전 3수 할 때 치던 월례고사 정도의 느낌 이었는

데, 그것보다 계산은 더 힘들었다.

점수가 바닥을 쳤다. 시간 내에 이걸 다 풀 수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하락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 풀었다.

다 풀고 났을 때... 수능 형의 문제는 그렇게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까지 생각보다 얻은 게 많지는 못했다.

EBS파이널을 모두 다 풀었다. 그 외 문제집도 풀었다.

10월 쯤 에는 어느 정도 성적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수리실수와 푸는 속도는 완전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10월 모의...언어시험시간은 시험을 보지 않고 다른 공부를 했다...)

수능이 다가오고 EBS 만점마무리를 사서 풀었는데... 수리는 문제가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썩 잘 풀지는 못했다. 아직도 실력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외국어는... 모든 나의 자신감을 부스러 뜨렸다. 90점을 넘기 힘들었다.

살인적인 난이도 였다. 사설 모의고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외국어가 다시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점마무리 외국어영역은 문제가 그렇게 수능에 도움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어휘난이도가 너무 높게 잡혀있는 느낌 이었다.











11월 에는 모의고사가 많았다. 그래도 모두 다 보기 위해서 노력했다.


수능이 다가 오자, 나는 작년 수능 문제와, 작년 9월 모의평가,

그리고 올해 9월 모의평가 를 매일 ‘실전’처럼 풀고,

하나하나 분석 하면서 공부를 했다.


드디어 시험 전 날이었다. 미리 시험장을 보는 날이 또 온 것이었다.

시험장을 가서 둘러보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교실 중간 가까이의 자리였다.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방송음질은 그렇게 까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3수 때 인가. 듣기 평가 음질이 좋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이 생각났다.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학생. 거기서 뭐하나...? 나오게.”

이 학교 선생님이신 듯 했다.

내일이면... 나는 이 자리에서 시험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마음을 다졌다.










수능 시험장은 지하철로 갈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더 이상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걸어서 갈 수 있었으니.










수능 시험 전 날 밤은 언제나... 긴장감이 있다.

자기 전에 눈을 감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승부.







나의 5번째 수능.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스승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방문을 천천히 열고 밖으로 나섰다.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한 편 담담한 느낌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정거장을 지나 도착 했다.

내려서 조금 걸으니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응원을 하고 있고, 내가 아는 선생님도 계셨다.


나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했다.

우리 모교학생들 모두 파이팅! 을 마음속으로 외치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험장에서는 공부를 한다고 해봐야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쉬는 시간에 읽기 위해서.

과목별로 정말 적당한 분량으로 요약된 자료들을 들고 왔다.





●1교시 언어영역.

감독관이 들어왔다. 나는 심호흡을 가볍게 하고 시험을 준비 했다.

언어영역 시험이 시작 되었다. 작년의 언어영역 난이도가 쉬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꽤 난이도 있게 출제 될 것으로 생각 했었다.

하지만 막상 풀고 있는데 난이도가 그렇게 까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하게 다 풀어내자, 10분하고 약간의 시간이 더 남았다.

검토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 했다.

평소보다 검토를 하는 시간이 크게 많이 남아서,

난이도가 작년 정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남은 시험을 방심할 수가 더욱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언어영역은 무난히 풀어내었다.





“저 형 ... 다 풀고 검토 하고 있던데.. ”



시험 끝나고 재학생 몇이 내 언어영역 푸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시험 중에 다른 사람은 어떨까? 생각 하는 것 보다는

시험장과 나만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정신을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쉬는 시간.

다음 시간을 위해서 1년을 보냈다.

정말 긴장되었다.

수리영역.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해낼 수 있어야 해.

계속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물을 마시면서 마음을 정리 했다.





●2교시 수리영역

드디어. 승부였다. 시험지를 받고 바로 문제들을 넘기면서 확인했다.

아뿔싸. 문제들이 만만치 않았다. 작년의 공포가 다시 머리 속에 느껴졌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절대로 패닉에 빠지면 안 되고,

작년처럼 문제를 잡고 있는 실수를 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 바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넘기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나는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문제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풀어 나갔다.

물론 보통 때 보다 계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약간은 속도가 느려졌지만,

보자마자 바로 안 풀리면 바로 다음 문제로 확확 넘어 갔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컨디션이 괜찮았다.

작년과 비교해보면 제대로 풀고 있었다.

역시 막히는 문제를 넘기는 훈련을 한게 도움이 크게 되었다.

그럼에도... 난이도가 꽤 있어서 힘들었다.

10분 정도가 남았을 때...  남은 건 4문제였다.

2문제를 집중해서 풀 고 나자, 남은 2문제에 한 문제당 2분 정도 밖에 시간이 없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포기하지말자. 포기 하지 말자.” 외치면서 2문제를 풀어내고,

마킹을 끝내자 종이 쳤다.

마킹을 다하고 답안지를 내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느껴졌다.

마지막 2문제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하면 확정 점수는 92점 +/-선 이었다.

좀 더 빨리 푸는 걸 연습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풀어 냈다는 점에 만족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나는 수리영역에서 쓰러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쉬웠지만. 시험은 공정한 것이라고. 이게 내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3교시 외국어 영역

최근 푼 EBS 외국어 영역 문제의 어휘들이 너무 어려워서

어려운 어휘를 쉬는 시간에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마지막으로 친 모의고사 영어 점수들이 96~98 정도로

거의 1~2문제 밖에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듣기에서 작년에 패닉으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침착하게 듣기를 했다. 바로 바로 마킹 하는 습관은 버렸다.

물론 이게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은 했지만,

한번 그 경험을 하자 효율 적이라도 도무지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듣기가 시작 되었는데, 체감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온 정신을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들었다.

최근 며칠사이 영어듣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고 느꼈지만,

역시 시험은 긴장 되었다.

듣기를 마치고, 나머지 33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어 영역은 나에게 시간을 쫓기게 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풀어나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스무스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된다고 생각 했다.

다 풀었다. 믿을 수 없었다. 20분 정도가 남았다.

항상 모든 문제를 풀때 정확하게 풀려고 하는

나는 시험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20분이나 남아버렸다. 순간 깨달았다.

외국어 영역이 이번에는 쉽게 출제 되었다는 것을.

마치 6차때 외국어 영역을 푼 느낌이었다.

(보통...7차 외국어영역이 변별력이 더 확실하다.)

긴장했다. 1문제로 1~2등급이 갈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점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검토하고 검토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리고 답안지를 제출 했다.





●4교시 과학탐구 영역

과학 탐구영역 시험이 시작되었다.

화학1-생물1-지학1-화학2의 순으로 나의 시험은 치루어 졌다.

화학1.

작년에 화학1을 외국어 듣기 평가의 패닉으로

제대로 풀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은 최선을 다해서 풀기로 했다.

그렇지만 풀어 나가는 데 ‘추론’을 해야 하는 문제들이 몇몇 끼여 있었다.

아는 이론을 바탕으로 최대한 생각해서 풀어냈지만 걱정이 되었다.

다 풀고 5분 정도가 남았다.

검토하면서 마킹을 해냈다.


생물1.

푸는 데 쉽게 보이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꽤 생각을 많이 해야 했다.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풀어냈다.

언제나 생물1은 풀 때 그렇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시간적 압박을 가장 적게 받는다고 느낀 게 생물1이었다.

다 풀고 나서 검토를 2번인가 했는데 실수를 1개 찾아냈다.

고치고 나서 마킹을 했다.



지학1.

난이도가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1문제에서 막혔다. 계속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답을 냈는데... 나중에 보니 틀렸다.

아쉬웠다. 생각을 조금 잘못 했었지만... 그것도 나의 잘못이었다.



화학2.

05-06, 올해 6월, 9월 모의고사까지 살인적인 난이도를 자랑했기 때문에

어렵게 나올 것을 예상 했다.

화학2만 5년 정도 하고, 여러 기본서와 강의들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론적으로는 틀릴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간 내에 풀어낼 수 있는가‘ 였다.

특히나 나는 같은 시험을 치면 항상 시험장에서 늦게 나가는 타입이었다.

(대학시험도 그렇다. 항상 거의 마지막에 시험지를 내고 나간다...)

한마디로, 꼼꼼하게 풀되, 시간이 부족하면 다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학2를 빠르게 푸는 연습을 나름 했지만,

구할 수 있는 시중 시험 중 수능의 실전 난이도 느낌이 나는 모의시험은 잘 없었다.


다른 과탐은 시간내에 충분히 풀수 있었다.

또 화학2라도 사설모의고사는 25분 내로 푸는 게 가능 했는데,

화학2 수능과 6,9월은 30분이라는 시간 내에 풀기는 정말 버거웠다.

하지만 4수 때는 학원에서 문제 풀이를 엄청 많이 해서

수능에서 화학2를 시간 내에 문제를 다 건드리고 1등급을 찍었었는데,

계속 양질의 속도전식 문제풀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수능은 고전을 생각했다.

하지만 저번 해 정도로만 나와 준다면,

사실 그렇게 까지 내 실력이 녹슬지는 않아서,

시험이 어려워도 1등급은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시험은... 역시나 무시무시하게 어려웠다.

과탐Ⅱ 과목을 수능 장에서 쳐보면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모의고사와는 체감 난이도 자체가 틀려서...  

물리Ⅱ의 경우는 말도 안되게 어렵게 출제 되었는데,

모의고사 만점을 받던 친구들도 13번 이후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많았다.


(수험생들은... 과탐Ⅱ 과목만은 꼭 시간을 줄이는 훈련을 시험이 다가 올수록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험문제에 계산 문제가 많이 나와서 빨리 풀어내도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종이 울렸다.

아아. 5문제를 못 풀었다.

5분. 5분만 더 있었어도.

결국 5문제를 찍었다.

나중에 채점 했을 때, 나는 화학2를 5개를 틀렸다.

(찍은 거 1개 맞고, 푼 거 한 개 틀렸다.)

문제 푸는 속도 훈련을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수학 훈련이 더 급선무였고,

독학으로는 그 훈련이 쉽지 않았다...





시험을 치고 나서 홀가분했다. 작년 보다는 그렇게 망친 것 같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몸이 무거웠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어쨌든 시험을 치뤘구나...’













언제 가채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며칠 뒤인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다음날 바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가채점을 입시사이트에서 했다.





언어는 만점이라고 생각했는데 1문제를 틀렸다.

다시 보니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틀릴 만 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정도의 난이도라면... 한 문제가 컸다.

하지만 저번 보다 꽤 난이도가 있는 편으로 평가 되었다.

(물론...6차 언어가 더 난이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잘 해 냈다고 생각했다.


외국어는 듣기에서 틀려 버렸다. 물론 내 실력의 부족이었다.

검토 할 시간에 듣기를 검토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니까.

듣기 평가는 단 한 번이니까.


이번 외국어는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는데

듣기가 까다로운 편이라서 듣기에서 망친 친구들이 많았다.

과탐 가채점을 했는데...

화학1은 2개를 틀렸다고 나왔다. 슬펐다. 왜 틀렸는지 잘 몰랐다.

슬펐다. 결국 작년의 벽을 넘지 못한 느낌이었다.

5년 동안 열심히 한 화학이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되었다.

( 나중에... 가채점을 실수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물1은 만족할 성적이었으나,


지1은 그저 그랬고,


화1, 화2는 만족하기에는 부족했다.

내가 좋아하는 과탐 과목이기에 더욱 그랬다.

특히...화2 5문제를 날린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수리가채점이었다.

10월 중순인가. 수능시험장에서 수리영역을 푸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고 내가 채점하는 광경이 보였다..

슬쩍 내가 내 뒤에서 본 나의 수리영역 점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실망하지 않고 있었다.

왜 일까.

재밌게도 꿈과 똑같이 가채점을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푼 문제들은 모두 맞추어 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에 허겁지겁 푼 문제를 틀렸다.

그리고... 주관식에서 또 계산 실수를 했다.

하지만...  ‘계산실수’도 이젠 나에게는 실력으로 받아 들여 졌다.

초등학교 문제집까지 풀면서 계산을 강화했지만, 결국 실수는 이어졌다.

하지만, 실수는 다들 하는 것이기에... 이건 내 실력이 미진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만점을 바라 보고 공부했던 한해여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올해 운을 생각해볼 때,

나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되는 점수였다.

가채점을 하고 나서... 나는 수리 2등급이라 생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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